우리동네엔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산다.

 

 중학교 때였다. 항상 무리지어 놀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방학이 되면서 한 녀석이 무리에서 빠졌다. 외국어고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다니게 된 학원이 바로 ㄱ학원. 우리는 친구를 보기 위해 쉬는 시간에 맞춰 학원 앞에 가서 기다려야 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편의점을 점령하고 간식을 먹는다.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 껴서 짧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해 여름이 지나면서 고교 평준화가 결정되고, 새로운 외국어고의 설립이 발표됐다. 나름 상위권 성적이라 명문고에 갈 것으로 기대했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나도 짧은 기간 외국어고 입시를 준비했다. ㄱ학원을 다니던 그 친구녀석은 이미 이름난 명문이었던 ㅁ외고에, 나는 새로 생긴 ㄱ외고에 응시했다. 나는 붙었고 녀석은 떨어졌다. 그리고  친구는 추첨에 따라 지역 내에서 제일 평판이 나빴던 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뭐라 위로해야 할 지 몰랐다. 고교 생활이 시작되자 나는 ‘외고생’으로 불리며 평준화지역 일반 고교생들과 구분되었다.  우리 사이엔 아주 얇은 벽 하나가 생겼다. 그 때 결심했다. 나의 친구를 앗아간 저 괴물, ㄱ학원에 복수하리라. 널 무너뜨리리라. 사회의 정의가 바로 서고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사라질 때, 네가 무너지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봐주마.


 힘없는 소년의 결의 따위 우습다는 듯 학원은 점점 번창해갔다. 평준화 첫 해에 수백명의 특목고 합격자를 배출한 그 학원은 명문으로 이름나기 시작했고, 학원생은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리고 보란듯이 우리 집 바로 앞에 CCTV와 400명 합격신화 현수막으로 중무장한 커다란 건물을 지어 분원을 냈다. 그런 ‘캠퍼스’가 이 지역에만 세 곳. 확인 해본 적은 없지만, 이 동네 중학생의 반은 ㄱ학원에 다니거나 다닌 적 있다는 말도 있다.


 조용하던 우리 동네는 이제 하루에 두 번, 중학교가 수업을 마치는 시간과 학원이 문을 닫는 시간에 학원버스와 자전거로 교통이 마비된다. 근처에 크고작은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뉴스에도 가끔 등장하는 커다란 학원가가 되었다. 고교시절  밤 11시까지 하는 자습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스쿨버스에서 끌어내릴 때면 그제서야 학원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는 외고 입시반 중학생들이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명문대학에 가기 위해 밤 11시까지 타율학습을 시키는 외국어고에 다닌다. 그 외국어고에 가기 위해 밤 12시까지 강의실에 가둔 채 CCTV로 감시하는 학원에 다닌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이니 괜찮다는 말을 한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국제중이라는게 생긴다는데, 그럼 이제 초등학생들이 새벽 1시까지 학원에 잡혀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얘긴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도 번듯한 직장에선 받아주는 곳이 없어 학원가로 흘러들어온 강사들? 학원에 등록하러 왔다가 교실을 비추는 CCTV 모니터로 도배된 학원 로비에 서서 흡족함을 느끼는 엄마들? 그런 학원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며 미래를 위한 투자와 희생을 말하는 중딩들? 현실성없는 대책만 쏟아내는 정부? 맨 꼭대기에서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웃고있는, 사교육 게임의 최종보스 서울대? 현실이 그래. 현실이 그러니까 우선은 공부부터 하고 보자. 너만 뒤쳐질 수는 없잖아. 그놈의 빌어먹을 현실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거냐고.


 ㄱ학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지역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아마 교육특구라 불리는 서울 어떤 동네에선 이 정도는 얘깃거리에도 못 낄 테지. 무섭다. 이 모든 풍경들이 당연해 지는 게 무섭다. 새삼스럽게 뭘. 이 말이 무섭다. 이제 아무도 됐어, 됐어, 됐어, 라고 외치지 않는다. 아직도 철지난 교실 이데아를 외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냉소가 무섭다. 모두들 너무나 잘 적응해가는 모습이 무섭다. 그렇게 적응된 사람들이 이 게임을 더 복잡하고 정교하고 거대하게 부풀려 간다. 아. 무섭다. 지금도 창밖엔 에어컨 실외기를 덕지덕지 붙인 벽을 달밑에 내밀고 괴물처럼 서있는 ㄱ학원의 모습이 보인다. 저기엔 우리의 동생들이 볼모로 잡혀 세뇌당하고 있다.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다.

by 일반쓰레기 | 2008/11/29 23:29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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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kibbe at 2008/11/30 13:55
먹었다 뱉었다 하는 괴물이죠.

학교 끝날즈음해서 꾸역꾸역꾸역 먹고, 12시즈음해서 뱉어대는...
Commented by 일반쓰레기 at 2008/11/30 23:01
갈수록 심해지는것 같습니다. 한 십년 전만 해도 '별보기 운동'은 고등학생들 얘기였는데..
Commented by 개구리 at 2009/02/11 01:06
이젠 초등생들도 열시 열한시까지 시달리는 세상. 차라리 애들을 테레비 앞에다 던져놓고 나몰라라하던 시절이 더 나았던 것 같아요.
Commented by ggg at 2009/05/29 22:45
지금도 보면 애들 포기하고 그냥 냅두는 부모들도 많아요,,
너무 관심 쏟으면 미칠것같고 내버려두면 외롭고, 항상 혼자있다보니 사회생활이 적어서 학교생활과 사람관계도 좋지 못하고 결국 삐뚤어지고..아주 개판이죠,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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