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꽃을 든 아저씨, 울지 말아요.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때의 초가을 쯤이었던 것 같다.

하늘은 가을답게 새파랬지만 아직 공기는 그리 차갑지 않았고, 푹푹찌는 무더위는 아니지만 강한 볕이 피부를 찌르는 꽤 더운 날이었다. 해가 기울어가지만 열기는 더 뜨거운 오후였고 바람도 불지 않는 탓에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나서, 나는 공원의 나무그늘 아래 잠시 쉬다 일어나 얼마 남지 않은 집까지의 거리를 재촉하고 있었다.

교복 셔츠까지 벗어제끼게 한 햇살 속에서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는 감색 겨울 양복 차림의 아저씨를 보았다. 이글이글 달구어진 길 저편에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중년을 훌쩍 넘겼으나 아직은 노인이랄 수는 없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은 가무잡잡하고 윤기가 있었다. 평소에 정장을 입을 만한 사람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엔 그 옷이 아주 덥겠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는데,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 가뭇한 얼굴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아주 서럽게도 울고 있었다. 인적없는 길에서 고등학생이 발을 멈추고 쳐다보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 않았다. 찡그린 얼굴의 주름을 따라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 떨어지는 눈물을 따라 내려간 내 시선이 꽂힌 곳은 축 늘어진채 걸음걸이를 따라 터덜 터덜 흔들리던 그의 손에 들린 장미 꽃다발이었다.

국화였다면 충분한 설명이 될 텐데, 장미였다. 나는 그냥 굳어버렸다. 땡볕에 서서 느릿한 걸음의 아저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쳐다봤다. 왜 이 무더운날 겨울 양복을, 왜 그렇게 서러운 눈물을, 왜 장미 꽃다발을 왜 이런 대낮에..

그때는 그저 그 상황과 이미지가 너무나 생소하고 기가 막혔을 뿐, 아무것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지금도 고작해야 사랑과 전쟁에나 나올법한 스토리나 떠오를 뿐이지만. (물론 나의 상상의 범위를 벗어난 어떤 사건일수도 있다. 내 상상력은 참 빈약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다만 장미꽃을 들고 길거리에서 엉엉 운다는게 어떤 느낌인지는 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아저씨가 그랬다는 것이 더욱 더 드라마틱할 따름이다.




(왜 연애밸리로 보내는지는....)

by 일반쓰레기 | 2009/01/04 22:37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2)

우리동네엔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이 산다.

 

 중학교 때였다. 항상 무리지어 놀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어느 날 방학이 되면서 한 녀석이 무리에서 빠졌다. 외국어고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가 다니게 된 학원이 바로 ㄱ학원. 우리는 친구를 보기 위해 쉬는 시간에 맞춰 학원 앞에 가서 기다려야 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편의점을 점령하고 간식을 먹는다. 우리는 그 틈바구니에 껴서 짧은 대화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해 여름이 지나면서 고교 평준화가 결정되고, 새로운 외국어고의 설립이 발표됐다. 나름 상위권 성적이라 명문고에 갈 것으로 기대했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나도 짧은 기간 외국어고 입시를 준비했다. ㄱ학원을 다니던 그 친구녀석은 이미 이름난 명문이었던 ㅁ외고에, 나는 새로 생긴 ㄱ외고에 응시했다. 나는 붙었고 녀석은 떨어졌다. 그리고  친구는 추첨에 따라 지역 내에서 제일 평판이 나빴던 ㅅ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뭐라 위로해야 할 지 몰랐다. 고교 생활이 시작되자 나는 ‘외고생’으로 불리며 평준화지역 일반 고교생들과 구분되었다.  우리 사이엔 아주 얇은 벽 하나가 생겼다. 그 때 결심했다. 나의 친구를 앗아간 저 괴물, ㄱ학원에 복수하리라. 널 무너뜨리리라. 사회의 정의가 바로 서고 입시지옥이라는 말이 사라질 때, 네가 무너지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봐주마.


 힘없는 소년의 결의 따위 우습다는 듯 학원은 점점 번창해갔다. 평준화 첫 해에 수백명의 특목고 합격자를 배출한 그 학원은 명문으로 이름나기 시작했고, 학원생은 엄청나게 불어났다. 그리고 보란듯이 우리 집 바로 앞에 CCTV와 400명 합격신화 현수막으로 중무장한 커다란 건물을 지어 분원을 냈다. 그런 ‘캠퍼스’가 이 지역에만 세 곳. 확인 해본 적은 없지만, 이 동네 중학생의 반은 ㄱ학원에 다니거나 다닌 적 있다는 말도 있다.


 조용하던 우리 동네는 이제 하루에 두 번, 중학교가 수업을 마치는 시간과 학원이 문을 닫는 시간에 학원버스와 자전거로 교통이 마비된다. 근처에 크고작은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뉴스에도 가끔 등장하는 커다란 학원가가 되었다. 고교시절  밤 11시까지 하는 자습을 마치고 돌아와 피곤한 몸을 스쿨버스에서 끌어내릴 때면 그제서야 학원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는 외고 입시반 중학생들이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명문대학에 가기 위해 밤 11시까지 타율학습을 시키는 외국어고에 다닌다. 그 외국어고에 가기 위해 밤 12시까지 강의실에 가둔 채 CCTV로 감시하는 학원에 다닌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것이니 괜찮다는 말을 한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국제중이라는게 생긴다는데, 그럼 이제 초등학생들이 새벽 1시까지 학원에 잡혀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얘긴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누가 이렇게 만든 것일까.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도 번듯한 직장에선 받아주는 곳이 없어 학원가로 흘러들어온 강사들? 학원에 등록하러 왔다가 교실을 비추는 CCTV 모니터로 도배된 학원 로비에 서서 흡족함을 느끼는 엄마들? 그런 학원에 제 발로 걸어들어가며 미래를 위한 투자와 희생을 말하는 중딩들? 현실성없는 대책만 쏟아내는 정부? 맨 꼭대기에서 이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웃고있는, 사교육 게임의 최종보스 서울대? 현실이 그래. 현실이 그러니까 우선은 공부부터 하고 보자. 너만 뒤쳐질 수는 없잖아. 그놈의 빌어먹을 현실은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거냐고.


 ㄱ학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 지역만의 문제도 아닐 것이다. 아마 교육특구라 불리는 서울 어떤 동네에선 이 정도는 얘깃거리에도 못 낄 테지. 무섭다. 이 모든 풍경들이 당연해 지는 게 무섭다. 새삼스럽게 뭘. 이 말이 무섭다. 이제 아무도 됐어, 됐어, 됐어, 라고 외치지 않는다. 아직도 철지난 교실 이데아를 외치고 있는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냉소가 무섭다. 모두들 너무나 잘 적응해가는 모습이 무섭다. 그렇게 적응된 사람들이 이 게임을 더 복잡하고 정교하고 거대하게 부풀려 간다. 아. 무섭다. 지금도 창밖엔 에어컨 실외기를 덕지덕지 붙인 벽을 달밑에 내밀고 괴물처럼 서있는 ㄱ학원의 모습이 보인다. 저기엔 우리의 동생들이 볼모로 잡혀 세뇌당하고 있다. 소름이 끼치도록 무섭다.

by 일반쓰레기 | 2008/11/29 23:29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4)

깜짝이야!!

'나는 구름위를 걷는다' 감상문을 쓴게
베스트리뷰에 당첨되다니!!

어휴.. 전전긍긍 하며 쓰긴 했지만 내놓기 부끄러운 글..
그것도 간신히 시간내에 (11시 59분 제출;;)쓴건데
좋게 봐주시다니

감사합니다. 렛츠리뷰 담당자님 관대하시군요! 넙죽.

오오 게다가 상품이 나쓰메소세키의 책이라니요 ㅠㅠㅠㅠ

by 일반쓰레기 | 2008/08/29 00:54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1)

이런것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성과물(?)모임

페이즐리무니 라이터
식물줄기무늬 라이터
구름둥둥 볼펜
무지개정어리 라이터
해바라기USB

역사적인 첫작품인 인디언문양 지포라이터랑
최근작 무지개 볼펜은 선물한 관계로 없네.

우연히 짝퉁 지포라이터를 얻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모양은 지포라이터 모양인데 프린팅된 무늬가 너무 멋이 없어서
이거 사포로 갈고 내가 그려볼까 했던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냥 재미삼아 하는 거니까 간단하게 해보려고
제일 구하기 쉬운 아크릴 물감으로 그렸다.

위의 작품들은 다 사포질후 아크릴 물감으로 그리고 마감제를 씌운 것들이다.

by 일반쓰레기 | 2008/08/27 03:39 | 멋대로작업 | 트랙백 | 덧글(2)

잠안오는 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며칠 전 부터.
아직 한낮은 뜨겁지만, 여름은 다 갔다.
그리고 해마다 이맘때쯤 그랬듯
바람이 불 때마다 가슴이 쿵쾅쿵쾅

나에게 바람의 속성이 있다고?
그런가부다. 난 확실히 바람에 예민하다.

요즘들어 누나의 작업실에 자주 가게 된다.
특히 주말엔 거의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낸다.

큰길가로 걸어가거나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지난 주말부터 큰누나의 추천으로 골목길로 돌아 가고 있다.
의외로 아기자기한 것들이 많은 동네라 재밌다.

아파트 공원 상가 딱딱 구획이 나뉘어져 블록별로 반복되어 있는게 일산의 보통 풍경인데
여긴 그냥 평범한 서울 주택가 동네같다. 가게랑 집들이 뒤섞여있고,
마당있는 단독주택과 계단식 연립주택도 섞여있다.
허름한데도 손님이 꽤 들어 맛집인가?싶은 식당도 있고, 의외의 장소에서 카페를 발견하기도 한다.
길에도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는데다 여기저기 불규칙하게 주차된 차들 때문에
일요일엔 곳곳에 있는 교회의 예배가 끝나는 시간이면 아주 혼잡해진다.
도시계획상으론 상권이 죽어버린 실패한 주상복합(?) 단지지만
유연하고 느슨하게 섞여있는 모습이 어쩐지 더 사람사는 동네답게 느껴진다.



작업실 가는 길에 인테리어DIY 용품을 파는 가게에서 밖을 내다보던 고양이들.
이런 우연한 조우가 아파트단지에선 기대하기 힘든 매력이다.

by 일반쓰레기 | 2008/08/27 03:23 | 끄적끄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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