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8월 26일
2011 반지하 스페이스 오딧세이
축축했다. 지난한 달간 비는 쉬지 않고 왔다. 하루에 한 시간 이십 분 동안 간신히 해가 비추고 지나가는 월세 30짜리 반지하 자취방은 그나마의 빛 줄기도 못 들이고 한 달째 동굴같이 캄캄했다. 비가 새는 곳은 없었지만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습기가 방안의 모든 것을 적셨다.꿈을 잊지 말자며 벽 한쪽이 가득 차게 붙여놓았던, 건축잡지의 스크랩들이 돌돌 말려 하나씩떨어졌다. 옆에 같이 붙어있던, 아이디어를 정리한 메모나건축가들의 명언을 모은 포스트잇들도 다 떨어졌는데, 도무지 그 사진 한 장, 유일하게 사람이 주인공으로 찍힌 그 사진만은 끝내 떨어지지 않고 붙어 있었다.사진이야 어쨌든, B군은 입을 꽉 다문 채 고무장갑 낀 손에 락스 묻은 스펀지를 들고 화장실타일 틈을 까맣게 덮은 곰팡이들을 문질렀다.
노래 부르기를 멈춘 라디오가 뉴스 속보를 쏟아내기시작했다. 강남 어느 동네를 산사태가 덮쳐 사람이 죽었다고. 사망자명단에는 대기업 사모님도 있단다. 부자들도 죽는구나, 부자들도집을 잃는구나. 곰팡이를 닦으며, 산사태에 쓸리는 것 보다는반지하에서 곰팡이를 닦는 게 아무래도 낫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이 근처엔 산이 없으니 참 다행이다. 뉴스 리프트의 바통을 넘겨받듯 아나운서가 사망자 명단을 읊기 시작했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말과 함께 커다란 집합주택을 남겼다. 기계라는 말이 프랑스인들에겐 거슬렸는지, 그 집합주택은 그리 성공하지못했다. 그곳에서 ‘살기위한 기계’는 하층민들의 슬럼처럼 여겨졌다. 코르뷔지에가 살아서 현대의 한국을둘러본다면, 아파트가 가득한 서울의 풍경을 보며 자신의 이상이 실현되었음을 기뻐할까. 건축가도 없이 건축사들이 설계한 '살기 위한 기계'가 전국 곳곳을 메우고, 중산층의 재산목록 1호이자 서민들의 선망의 대상, 대한민국에서 가장 가치 있는 거래품이되어 있으니. 특히 강남의 아파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값나가는 재화 중 하나일 텐데, 산사태에 쓸려갔으니 다 같이 슬퍼해야 하려나.
고무장갑이랑 수세미를 벗어 던지고 화장실에서나올 때, 다리가 많은 벌레 한 마리가 시선을 가로질러 벽을 기어갔다.지긋지긋해. B는 벌레 잡을 기운도 없다는 듯이 내뱉었다.벌레는 벽을 기어올라 끝내 떨어지지 않던 그 사진 앞에서 멈췄다. 산사태는 물론이거니와쓰나미가 와도 끝까지 벽에 붙어 있을 것만 같은 그 사진 속의 남녀가 B를 쳐다봤다. B는 사진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온 집안의 습기가 B의 숨을 막히게 했다. 살기 위한 기계라고, 그런데 집을 뜻하는 한자 두 개가 붙으면 우주가 된다. 한때 온전히두 사람의 우주였던 이 작은 자취방에서 B는 이제 익사할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나의 우주는 작살났어. 우주도 필요 없고, 곰팡이 핀 자취방도 지겨워. 이 집도 그냥 살기 위한 기계였으면좋겠어. 그 나지막한 혼잣말을 들었는지, 더듬이로 사진을가리키던 다리 많은 벌레가 슬금슬금 돌아서서 벽과 장판의 틈새로 사라졌다.
이번 주말까지 비가 계속되리라는 예보를 끝으로뉴스 특보는 끝이 났다. 라디오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B는바닥에 주저앉았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자취방의익사할 것 같은 습기 말이다. 그러면 스크랩과 메모들을 다시 펴서 나란히 벽에 붙이고, 장판 뒤로 숨은 벌레를 잡을 것이다. 벌레를 잡으면서, 떨어지지 않던 그 사진도 떼어내찢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그러리라는 것을, B도알고 있었다. 어쨌든, 오늘은 또 이 집에 누워 잠을 뒤척일것이다.
# by | 2011/08/26 01:39 | 트랙백 | 덧글(0)



